강연 요약 아티클

[벌거벗은 세계사] 피로 세운 전쟁 국가의 탄생!
일본 군국주의의 바탕, "메이지 유신"

박삼헌 교수

핵심 요약

1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며 전쟁 국가로 변모했다.

2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군국주의가 심화되었고, 이는 아시아 침략의 근간이 되었다.

3

결국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지만, 군국주의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있어 주변국들의 경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연 타임라인

00:44

이와쿠라 사절단의 파견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서양식 국가로 변화하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했습니다. 1871년, 정부 수립 3년 만에 관료 46명, 수행원 18명, 유학생 4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을 꾸려 미국과 유럽 각국으로 파견했는데, 이를 이와쿠라 사절단이라고 합니다.

이 사절단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과 정부 고관들이 대거 포함되었습니다. 당시 국가 예산의 약 1%에 해당하는 50만 달러(약 1,000억 원)의 거액을 들여 1년 10개월간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12개국을 방문하며 서양 문물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02:26

서양의 산업 정책 학습

사절단은 서양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고 선진국으로 인정받기를 열망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미국 연설에서 '일본이 가장 희망하는 것은 서양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천명하며 서양 국가 그룹에 편입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사절단은 미국 캘리포니아, 네바다, 시카고, 워싱턴 등을 시찰하고, 영국에서는 조선소, 제철소, 고무 공장 등 53개 공장을 방문하여 석탄과 철강을 동력으로 하는 산업 정책을 배웠습니다. 또한 영국제 철도 기관차와 군함을 대량 주문했습니다.

03:45

국내 산업 및 군사력 강화

해외 사절단이 선진 문물을 배우는 동안 일본 내부에서도 강력한 군사 국가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그 시작은 미국 페리가 일본에 가져온 증기 기관차 모형이었습니다. 비록 작은 크기였지만, 스스로 움직이며 빠르게 이동하는 기관차는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과학 기술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정부는 과거 막부와 번이 독점했던 토지 징수 및 세금 거두는 권한을 독점하여 산업 투자 재원으로 활용했습니다. 철도 산업의 발전은 광산 개발, 제철소 건설을 촉진했으며, 방적, 조선업, 기계 공업 등 군사 공업 분야에서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07:52

조선 침략과 강화도 조약

1875년, 일본은 대마도 침공 후 불과 1년 만에 운요호 군함을 파견하여 조선 침략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운요호의 모습은 페리가 끌고 왔던 미국 함선을 연상시키며, 일본은 페리가 조선에 통상 교역을 요구했던 것처럼 조선에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페리와 달리 일본은 무단 상륙을 시도했고, 이에 조선군이 자위 차원에서 포격했습니다. 이를 빌미로 일본은 6개월 뒤 함대를 이끌고 다시 조선에 와서 무력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조약은 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일본 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 불가 등 일본이 서양으로부터 당했던 것과 유사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10:25

전쟁 국가의 탄생과 군국주의 심화

일본은 서양처럼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했습니다. 전쟁이 이로움을 가져다준다는 군국주의 정신을 필요로 했으며, 국가와 천황의 목표가 곧 일본 국민 개개인의 목표인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하는 과정을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는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1894년 조선에서 청나라와 청일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예상대로 일본의 압승으로 끝났으며, 특히 해군에서 월등한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일본 전함의 평균 속도가 훨씬 빨랐고, 속사포 공격으로 중국 전함 다섯 척이 침몰하거나 퇴각하는 등 막강한 전력을 과시했습니다.

13:51

청일전쟁의 배상금과 영토 획득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배상금과 함께 중국 영토인 랴오둥 반도, 대만, 펑후를 넘겨받았습니다. 특히 전쟁 배상금은 무려 2억 3천만 냥으로, 당시 일본 1년 예산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전쟁 배상금의 단맛을 본 일본은 국민들까지 합심하여 정부의 대외 팽창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 반도를 다시 반환하게 되자, 일본 국민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15:37

러일전쟁의 준비와 전개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재정 지출의 80%를 군사비로 쏟아부으며 막대한 군비를 증강했습니다. 내부 재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외국 자본까지 도입하며 14억 엔의 빚을 지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함선뿐만 아니라 야전 중포와 공성포 등 가장 우수한 무기를 독일과 프랑스에서 수입했습니다. 1904년,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러일전쟁을 시작했고, 약 1년 만에 일본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17:56

러일전쟁 후 국민들의 불만

일본 국민들은 러일전쟁에서 당시 예산의 7년치에 달하는 약 19억 엔의 전비를 사용하고 8만여 명의 인명 희생을 치렀음에도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점에 크게 비판했습니다. 경찰서 70%가 습격당하고 미국인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등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국민들까지 전쟁에 익숙해져 버린 모습은 당시 일본이 침략전쟁으로 영토를 넓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풍자적인 삽화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21:47

한일 병합과 1차 세계대전 참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통과시키며 일제 강점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페리에 의해 시작되었던 불평등 조약을 완전한 평등 조약으로 개정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국과의 동맹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참전을 선포했습니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유럽의 전쟁이 '국내외의 모든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선언하며 적극적인 참전을 주장했습니다.

23:04

1차 세계대전의 경제적 이득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은 유럽 상품을 대신하여 일본 면 직물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며 무역에서 압도적인 수출 초과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해운업과 조선업의 호황, 철강업, 화학 공업, 전력 사업 등 중화학 공업의 발전으로 공업 생산이 농업 생산을 앞지르는 공업 국가로 변모했습니다. 전쟁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재정 위기를 극복한 일본은 미쓰비시 기업들을 통해 제로센 특공대 비행기까지 만들어내며 2차 세계대전에 대비했습니다.

24:35

제2차 세계대전 패망

결국 일본이 선택한 전쟁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탄생시켰고, 약 1백만 명의 자국민과 약 2천만 명의 아시아인이 희생되었으며 한반도를 포함한 많은 국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1945년 패망하면서 메이지 유신 이후 쌓아 올린 전쟁 국가의 막이 내렸고, 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실전에 투입된 핵무기로 인한 참혹한 패망을 맞이했습니다.

25:19

군국주의의 그림자와 미래

1947년 새로 발표된 일본 헌법에는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도 포기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본에는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정세가 변하면서 일본 헌법에 명시된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 포기 원칙은 이미 무너진 상태입니다. 이미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해상자위대를 비롯한 일본의 군사력은 불안정한 아시아 정세 속에서 태풍의 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전쟁에 몰입하며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던 메이지 유신 시대의 움직임, 그리고 전쟁을 통해 국가 위기를 극복해왔던 일본의 행보 하나하나에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선택한 전쟁 국가의 길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패망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군국주의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일본의 군사력 확대는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국들의 경계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전쟁과 군국주의가 가져온 비극을 기억하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메이지 유신의 역사는 근대화의 성공 사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과 침략의 역사이기도 합니다.